기꺼이 함께하는 다정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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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3  일과 생활의 경계를 허물며 살아가는 수린이네

김성윤과 전하영 부부는 경계를 허무는 데 익숙하다. 적절한 노동과 쉼을 중요시하는 워라밸 대신, 집안에 작업실을 들여 일과 삶 사이를 긴밀하게 오가는 것을 택했다.

아이를 낳은 이후에는 경계를 무너뜨리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 아이와 일터를 오가는 것뿐 아니라 관심사를 공유하는 일까지 기꺼이 함께한다.

이들에게는 어떤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려요. 


(성윤) 공간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이자 디자이너 김성윤입니다. 



(하영) 전하영이라고 합니다. 남편과 디자인 회사를 같이 운영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있어요. 



(수린) 저는 김수린이고 열 살이에요. 마지막으로 강아지 베리도 있어요.





집이 언덕길 중턱에 자리해 있네요. 한옥 사이에 우뚝 솟은 집을 봤는데 저기가 하영님 집이겠다고 얼핏 생각했어요.


(하영)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언덕길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서 헤매는 분들도 있고 그래요. 그래도 알려주신 대로 잘 찾아오셨네요.

집에 들어서니 풍경이 워낙 예쁘죠? 바로 옆은 인왕산, 저 멀리는 북악산이 훤히 내다보이고요. 창이 곳곳에 있어서 계절의 흐름을 훤히 볼 수 있어요.






아담하고 다정한 분위기가 감도는 집이네요. 단빛집이라는 이름도 잘 어울려요.


(성윤) 건물을 보시면 크게 두 덩어리로 나뉘어 있어요. 건물 중앙에 계단을 두고 두 개의 독립된 공간으로 분리되게끔 구상했어요. 1층은 작은 정원과 사무실, 맞은편에는 탕비실과 샘플실이 있고요. 2층은 서재 겸 거실과 안방, 3층에는 주방과 세탁실, 욕실, 그 위에는 작은 다락과 옥상이 있어요.



(수린) 엄마, 아빠가 먼저 잠들면 몰래 옥상에 올라가 별도 보고 그래요.




 

 

 


 

이전에는 한옥에서 거주하셨다고 들었어요. 한옥을 구하게 된 과정도 궁금해요.


(성윤) 처음부터 한옥에 살 계획은 없었어요. 첫 신혼집이 아파트였는데 2년가량 살다 보니 조금 답답하더라고요. 살면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아파트에서 그렇게 하기는 제한적이잖아요.

아내는 어릴 때부터 단독 주택에 살아서 정형화된 아파트에 사는 걸 힘들어했고요. 그러던 중 저희 둘 다 건축설계 학과를 전공했으니 집을 지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넉넉지 않은 예산으로 집을 구하려니 1년가량 찾아도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이 없더라고요. 아이가 자라는 환경, 교통편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다 보니까 택하기가 더욱더 어려웠고요.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곳이 1940년대에 지어진 낡은 한옥이었어요.





오래된 한옥은 손 볼 곳이 많을 텐데, 과감한 결정을 하셨네요.


(성윤) 집을 보러 갈 때 수린이를 매번 데리고 다녔는데, 평소에는 빨리 나가려고 하던 아이가 그날따라 뭐가 좋았는지 계속 있으려고 하더라고요.

1m도 안 되는 좁은 골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보이는 스산한 분위기의 한옥이었는데 말이죠. 고민 끝에 그날 바로 덜컥 계약했어요.

당시 재직 중인 회사까지 걸어서 출퇴근할 수 있고 광화문 도심과도 가깝고, 산이 둘러싸인 풍경도 예쁘더라고요. 그 후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재밌는 추억을 많이 쌓았어요.






정성 들여 고친 한옥이라고 들었는데 새로운 보금자리를 다시 만드셨네요.


(성윤) 퇴사하고 스튜디오를 설립하면서 작은 사무실을 집안에 마련했는데요. 한옥의 조그마한 중정을 사무실로 활용했어요.

뚫려 있는 천장을 반투명한 소재의 폴리카보네이트로 막고 책상을 임시로 두며 6개월간 일했었죠. 헛간에서 사업을 시작한 실리콘밸리 창업 스토리랑 비슷하지 않나요? (웃음)



저 홀로 시작한 터라 사무실 면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직원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온 거예요. 직원한테 한옥 마당에서 일하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때 집과 사무실을 겸하는 건물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아니면 영영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결과로 지금의 단빛집이 생겼죠.




 

 




집과 사무실이 한 공간에 자리해 있다니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일에 사로잡힐까 봐 조금 염려돼요. 저는 일과 쉼을 잘 분리하지 못하는 성향이거든요.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은 어때요?


(하영)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하듯, 각자가 추구하는 워라밸도 다른 것 같아요. 일과 쉼을 명확히 구분 짓는 게 누군가에게 적합한 방식일 수도 있고, 일과 삶이 긴밀하게 연결된 생활이 맞을 수도 있고요.

저희는 후자에 가까워요. 특히 남편은 끝없이 일하는 성향이에요. 일과 취미가 모두 '공간 디자인'인 셈이죠. 저는 일을 끝마치면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요리와 영상 편집부터 운동, 예술 분야까지 얕지만 폭넓은 분야에 관심도 있고요. 제가 뭐든 제안하면 남편이 잘 따라준 덕분에 수영, 스키는 온 가족이 즐기는 스포츠가 됐고, 미술관과 음악회는 틈날 때마다 가고 있어요.





온 가족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뿐 아니라 일터에 함께 다니는 모습도 신선했어요. 일과 삶을 경계 짓지 않는 모습이 여기서도 나타나네요.


(하영) 업무 상황에 맞게 달리 움직이는 편인데 주말에는 아이와 현장을 방문해 실측하기도 하고, 가구를 고르러 다 같이 이케아에 가기도 해요.

남편이 지방 출장을 갈 때면 가끔은 따라나서서 남편이 일할 동안 아이와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고요.



(성윤) 수린이가 작업 현장을 구석구석 살피면서 나름대로 재미를 찾는 것 같아요. 시공하고 바뀐 부분을 알아차리더라고요. 어릴 적부터 도면을 보고 그린 경험도 있어서 제가 가끔 의견을 구하기도 해요.






가끔은 수린이가 예상치 못한 말을 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성윤) 뜨끔할 때가 있어요. 집을 보러 부동산을 한참 다녔을 즈음에 딸기 농장에 한 번 다녀왔거든요. '꽃동산 딸기 농장'이라 써진 팻말을 보더니, ‘부동산만 있는 줄 알았는데 꽃동산도 있네?’라고 말하는 거예요.

다섯 살 즈음에는 공사장 옆을 지나가는데 ‘어? 내가 좋아하는 공사장이잖아?’라고 말한 적도 있고요.조기교육의 효과 같기도 하고.(웃음)




 




하영님이 관리하는 SNS 계정을 보면 수린이를 양육해야 할 아이로 바라보기보다는 동반자로 대하는 느낌이에요. 평소 어떤 태도로 수린이를 대하는지 궁금해요.


(하영) 오래전부터 어른과 아이가 분리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조건 아이에게 맞추겠다는 뜻이 아니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는 의미에 가까워요.

저희가 하는 일에 대해 의견을 함께 나누는 것도 그중 하나고요. 어쩌면 수린이한테는 작업 현장부터 미술관이나 클래식 연주회까지 다양한 곳에 가는 게 불편하고 지루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 제 할 일이에요.




아이와 함께 관심사를 즐기는 하영님만의 팁이 있나요?


(하영) 클래식 공연을 데려갈 때면 노트랑 필기구를 줘요. 수린이는 노래를 계속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고요. 미술관에서는 작품을 보면서 말을 많이 걸어요. 아이가 흥미를 느낄 있도록 계속 방법을 찾는 거예요. 유튜브도 그중 하나의 수단이고요.

작년부터는 코로나 19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웬디 맥(Wendy Mac) 그림 작가의 라이브 방송을 즐겨보게 됐어요.영상 덕분에 수린이는 그림을 재밌게 그릴 수 있게 됐죠.



 




그래서 그런지 벽이나 화장실에 수린이의 그림이 많이 걸려 있네요. 수린이의 작업을 아카이브SNS 계정도 봤어요.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하영) 특별한 의도 없이 그냥 남겨두고 싶어서 제가 임의로 계정을 관리하고 있어요. 특히 다섯 살 적에 크레파스를 문지르며 신나게 그림을 그리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해요.

수린이가 미술을 너무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은 미술 학원에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에요. 똑같은 사물을 그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그림이 하나쯤은 있잖아요.

지금이 여러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와 해결 방법을 찾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수린이가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기에 다져진 자신만의 내공으로 삶을 살아내길 바라요.




마지막으로 성윤님과 하영님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이 궁금해요.


(성윤) 지인 중에 너무나도 사이좋은 부녀가 있는데요. 따님이 30대 후반인데도 아버님이랑 주말에 꼭 스키를 타러 다니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커서도 저랑 스키를 탈 거냐고 수린이에게 물어봐요.

알겠다고 대답은 하지만 모르죠. 지금도 아내랑 수린이랑 너무 친해서 소외당하고 있거든요.(웃음) 시간이 흘러도 무언가를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리고 수린이가 공간 디자이너로서 가업을 이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도 있습니다.  



(하영) 저는 싫은데!(웃음) 조금 더 자유로운 아이로 자라나면 좋겠어요. 집에서 보낸 시간이 수린이의 기억에 뿌리를 깊게 내리길 바라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고 믿거든요.






글 | 박지은

사진 | 디자인 아·박지은